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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면 드러난다" |
| 스탠라이 '어른들을 위한 창의학 수업' 중 |
| 기사입력 2011-06-08 오후 11:12:00 | 최종수정 2011-06-08 23:12 |
틱낫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물이든 그 마음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는 라벨과 개념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가장 직접적인 소통이자 가장 직접적으로 '보는 ' 행위이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그 순간 사물은 자연히 진면목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인생도 그렇고 창의적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원형을 볼 수 있다면, 나아가 인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보는' 능력은 사실 한 가지 능력의 양면이다. 이 능력은 바로 평온함이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것은 결코 느슨해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집중하여 눈앞에 놓인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다. '여시관'을 통해 평온한 마음으로 일체의 라벨과 개념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을 제로 상태로 되돌리면, 마음은 최적의 수신기가 된다.
사물의 원형을 보는 것이 바로 사물의 전체적 모습을 보는 것이다. 숨겨진 부분도 없고 인위적으로 가해진 위장도 없다.
이런 방삭으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면, 누군가 설령 위장을 했더라도 그 위장의 라벨을 떼어내고 그 사람의 원형과 위장의 원인, 그리고 위장이 가져올 결과까지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그러나 그 결론이 꼭 객관적 사실이 될 필요는 없다. 관찰한 결론은 비밀로 간직하고 창작을 위한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판단을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보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관찰이 객관적 진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주관적이고 일시적이며 관찰자 본인에게만 유효할 뿐이다.
사람이나 사건, 사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인과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창의력은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의 원형을 통찰해내면, 그것의 잠재력(본래의 바탕이 어떠한지)과 앞으로의 가능한 변화(현재 상태에서 미래의 발전을 가늠하는 것)를 꿰뚫어볼 수 있다. 만약 이 두 가지 '보는' 기술이 없다면, '보는' 능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표면적인 것만 볼 수 있을 뿐,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표면적인 것에 끌리게 되고, 창의적 과정도 표면적인 것만 모방하게 된다. 결국 작품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 <어른들을 위한 창의학 수업> 중 pp. 189~190, 2007, 스탠라이 지음, 신다영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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